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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가녀장의 지령이다. 웅이가 망치를 들고 오더니 벽에 쾅쾅 못질을 한다. 슬아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그것을 지켜본다.
17p.
쉰다섯 살의 웅이는 부친이자 피고용인이다. 작년까지는 일용직으로 일하다가 올해부터 비정규직 사원이 되었따.
18p.
복희는 슬아의 모친이자 피고용이다. 웅이와 달리 그는 슬아의 출판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한다.
19p.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선 자기들끼리 중얼거린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20p.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33p.
집안은 슬아 중심의 가녀장 체재로 재배치되었다. 오늘날 복희와 웅이는 슬아 밑에서 일한다. 출판사 업무뿐 아니라 집안일도 부부의 몫이다. 웅이가 주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복희가 부엌일을 책임진다. 복희의 월급은 웅이 월급의 두배다.
“엄마의 노동이 아빠의 노동보다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야.”
가녀장이 말했다. 이에 관해 웅이는 어떠한 불만도 없다.
68p.
그는 틀려도 개의치 않는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에게 너그럽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과 타인에 관해서도 너그럽기 마련이다. 친절하게 정정해주면 그는 기뻐한다.
86p.
얼마나 억울하것어. 그만큼 공부를 했는디 입학금을 못 넣어서 학교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분하고 슬프겄어. 다 무효가 되었으니 복희는 복희대로 다락에서 울고 나는 나대로 부엌에서 울었지.
172p.
막상 저렇게 열심히 할 거면서 왜 안 오려고 한 거냐…… 그러다가 깨닫는다. 열심히 할 걸 알아서 안 오려고 한 거구나.
180p.
다만 자신의 수고가 바람처럼 날아가는 것 같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식사는 언제나 휘리릭 끝나버리고 만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오늘 차린 밥상 같은 건 슬아나 웅이나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복희 자신조차도 잊을 게 분명하다.
210p.
친근함과 만만함은 깻잎 한 장 차이일 수도 있어.
244p.
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게 될 거야.
245p.
월요일은 또 돌아올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계의 아름다움 역시 달라질 것이다.
독립출판사를 꾸린 슬아가 어머니인 복희와 아버지인 웅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소소한 일상에 녹아있는 가부장시대의 폐해와 현 시점 여성과 소수자들이 맞닥드리는 어려움(이라고 쓰고 짜증남이라 읽는다)이 살며시 녹아있다.
왜 나는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감정이 북받쳐오르는지,
가녀장시대에서도 가장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에피소드는 복희의 집안일 에피소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으며 티타의 감정에 공감하는 복희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는데 자꾸만 나는 눈물이 났다.
줏대있는 삶을 사는 슬아가 부럽다.
아니다 줏대있게 살면서 성공한 슬아가 부럽다.
나도 성공해서 엄마를 고용해서 평생 해온 집안일에 댓가를 부여해주고싶다.
문득 소설속 주인공에게 부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