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록] 파견자들 -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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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p
그 애는 겨울에 도착한 불청객이었다.
6p
잘해주려는 마음도 상대가 받아줘야 가능한 거지. 상대는 고마워할 생각도 없는데 잘해줘 봐야 뭘 한담.
11p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23p
"바쁘다고.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험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고! 내 인생을 바꿀 시험이." "그렇지만, 이쪽도 흥미로운데?"
32p
자아가 해체되고 자신이 이 현실에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는,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그러다 결국 미쳐버리고, 사나워지고, 때로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하겠지. 언제까지 여자는 기계들로부터 숨을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설령 숨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 끝이 멀쩡하긴 할까?
327p
이제프는 태린에게 지상을 주고 싶었다. 노을과 별들을 주고 싶었다. 단지 파견자가 되어 지상을 경험하고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생략)
별과 노을과 바다가 있는 행성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되어야 했다.
345p
한때 공생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도 없는 존재들을 대상으로 공생이라니.
이 소설을 읽고 딱 한 문장이 떠올랐다.
: 나는 너 너는 나
나란 존재란 무엇인지? 내가 내 몸을 통제할 수 없더라도 그건 여전히 나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어? 많은 질문들이 복잡하게 지나가며 소설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어쩌면 태린이처럼 어쨌거나 저 쨌거나 이나저나 저나저나 솔이의 존재와 상관없이 나는 나라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쉬운 결론일지도🤫
스토리에 대해서도 살짝 이야기해 보자면
태린과 선오, 그리고 이제프와 자스완, 마일라까지.
사람 간의 관계가 좋았고, 그 각자의 서사가 좋았으며 그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는 제법 몰입력이 좋았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조금은 허무했다.
그 앞에 쌓아 올린 서사들이 찹찹찹찹 맞아떨어진다기보다는, 정성스레 세운 도미노를 우르르 정리함에 몰아넣고 “정리 끝! 내일 또 놀아야지!“라는 느낌이랄까요
김초엽 작가님의 글답게 소재는 신선하고 참신했다.
다만, 보조 장치가 뭔지, 파견자는 무슨 직업인지 ‘범람화’가 무슨 뜻인지 모두 추측해가며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조금은 불친절하다고 느낄 구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
때문에 스토리 중반까지는 몰입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서술이 좀 더 상세했으면 좋았겠다는 부분이었다.
1. 선오는 어떻게 연구실을 먼저 빠져나와 자스완이 키우게 되었는지, 2. 마지막에 이제프가 죽게 되는 장면이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느껴졌는데 다른 해결 방식을 없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파견자들의 세계에 들어와있고(마치 SF 게임처럼), 단편적인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에 현실에 한 발자국 더 나와있는 감각을 선사하기도 했다.
-끗-